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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작 레미제라블 작품 요약

     

    삼십 년이라는 거의 평생을 걸쳐 구상해 1862년에 완성한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최고 대표작입니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어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제목은 작품 안에서 진짜 불쌍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묻는 작품의 주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빵 한 조각을 훔쳐 감옥살이를 하는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마지막에는 프랑스 시민혁명이 배경으로 나오면서 거대한 역사소설과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흐름은 작가 자신이 처했던 당시 뼈저린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시인 보들레르는 위고에 대해 '그는 언제나 약하고 고독한 사람,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을 친구로 대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레미제라블에는 가난하고 비참함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작가가 그들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도 작품곳곳에 나타나 있다. 위고는 자기 주변사람들의 모습에서 등장인물을 가져왔습니다. 미리엘 신부는 실제인물로 높은 인품과 소박한 생활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빵을 훔치다가 붙잡혀 5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던 피에르 모랑이라는 인물은 장발장의 모델이 됩니다. 저마다 불행을 간직한 개인이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는 데는 무엇보다 사랑과 용서가 필요하다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습니다. 용서와 사랑이 한 인간을 어떻게 바뀌게 하는지, 과연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런 작가의 깊은 생각은 장대한 시적 표현과 합쳐져 19세기 유럽 문학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은이 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났습니다. 나폴레옹을 섬기던 장군이던 아버지는 위고가 군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며 문학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위고는 각종 시 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면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고, 스무 살 때는 첫 시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혁명을 겪은 프랑스 사회는 거센 변화의 물결 탓에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공화파와 왕당파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왕당파는 왕과 귀족 평민으로 이루어진 신분사회를 부활시키려고 했고 공화파는 신분제도를 없애고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사회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위고는 공화파가 되어 싸웠고 이 일로 위고는 핍박을 받게 되고, 19년이나 다른 나라에 숨어 살면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걸작 레미제라블도 망명생활을 하던 1862년에 완성했습니다. 이 외에도 노트르담의 꼽추, 크롬웰, 에르나니 등 많은 명작들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위고는 인류는 언제나 앞을 향해 나아간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또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일생을 사회의 발전, 차별을 없애기 위해 싸운 빅토르 위고는 숨을 거둘 때까지 주로 인간의 도리를 고민하는 작품들을 써냈습니다. 위고가 죽자 프랑스 국민들은 이런 뜻을 기려 위고를 국민적인 대시인으로 떠받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공을 세운 사람만이 묻히는 팡테옹에 묻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의 시대 상황

    1789년 프랑스혁명과 공화정의 시작. 불평등함에 화가는 평민들은 1789년에 프랑스혁명을 일으켜, 루이 16세가 이끄는 정부를 무너뜨렸습니다. 1792년 프랑스에서는 왕이 다스리는 정치인 왕정이 폐지되고 국민의대표가 이끄는 정치인 공화정이 이룩되었습니다. 왕정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왕당파, 공화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공화파라고 합니다. 혁명전쟁과 왕당파의 반격. 프랑스혁명이 자신의 나라까지 번질까 봐 두려웠던 이웃나라들이 프랑스로 쳐들어옵니다. 왕당파는 이웃나라들을 도왔고 공화파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때 나폴레옹이 나타나 공화파의 중심이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 전쟁을 혁병전쟁이라고 합니다. 그 뒤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1796년 장발장이 빵 하나를 훔쳐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과 왕정복고. 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나폴레옹은 자리에서 쫓겨나 엘바섬에 유배당하고 맙니다. 권력을 잡게 된 왕당파는 다시 왕정을 시작합니다. 1814년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갔던 루이스 18세가 돌아와 프랑스왕이 되었고 그 뒤를 샤를 10세가 잇게 됩니다. 샤를 10세는 프랑스를 혁명 전으로 되돌려놓으려 했습니다. 1815년 장발장이 19년 만에 감옥에서 나옵니다. 1830년 7월 혁명과 7월 왕정. 샤를 10세를 몰아내기 위해 1830년 7월에 또다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시민들은 3일 동안 전투 끝에 샤를 10세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국민들에게 호의적인 루이필립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하지만 왕정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화파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도 한참 동안 프랑스에서는 왕당파와 공화파의 대립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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